中國風景 그리고 中國

청나라 황제들의 지하무덤 (중국하북성

라파엘/표종환 2012. 9. 25. 18:10


청나라 황제들의 지하무덤 중국.하북성

2006/12/26 17:26

복사 http://blog.naver.com/etien/80032720213



무덤으로 내려갑니다..... 조명이 너무 어둡습니다.... 많이 떨리네요.....



무덤이 아니라 집으로 들어가는 분위기 입니다....



무덤 제일 안쪽..... 관이 있습니다.... 건륭황제의 사진이 걸려져 있네요....



흐흐흐..... 사진을 못찍게 하는데..... 관람객이 없어서.... 감시원이 없습니다....



석관입니다....



청나라에 들어서서....

만주족들은 티벳 라마불교를 엄청 숭상합니다.... 그 한이유가 몽골지방에서도 이 라마불교가 융성하는데.... 북쪽의 몽골족들의 지배를 위한 하나의 작전이였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무덤안에도 몽골어 라마교 경전을 새겨 넣었습니다....


지하무덤을 나와 무덤앞 누각에 올라갑니다....



올라왔던 길.....



무덤입니다.... 벽돌로 쌓아서 분을 만들었습니다..... 무덤위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네요.....



서태후의 무덤 중국.하북성

2006/12/26 17:09

복사 http://blog.naver.com/etien/80032719585



건륭황제릉.....





이 무덤들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무덤은...... 서태후의 무덤일겁니다...

서태후....

함풍제(1851-1861)의 후비가 되고....

그가 낳은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권력을 잡기 시작합니다...

남편 함풍제가 죽은 후....

동치제.... 1862-1874년

광서제.... 1785-1908년까지.... 엄청날 권력을 휘두른 여인입니다....

그러나 죽고... 이곳에 묻히고.... 군벌들은 이곳의 무덤을 도굴합니다....


서태후.... 어디서 태어났는가???? 출생의 비밀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서태후는....

1835년 산서성 장치현 서파통의 한 가난한 한족 농민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름은 왕소겸... 4살때 양녀로 팔려가 이름을 송령아로 바꾸고... 12세때 다시 시녀로 팔려가 이름을 옥란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1852년 혜징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궁녀로 선발되어 입궁합니다...

이때 이미 서구 열강들은 중국을 아편의 도가니에 밀어넣고 침탈을 일삼습니다...

궁에 들어간 서태후는 황제의 총애를 받기위해 일년동안 부단히 노력합니다... 황제를 모시는 내시들에게 부탁해 황제가 산책할 무렵 서태후는 자기 장기중 하나인 노래를 합니다...

산보를 하던 황제가 은은한 노래를 따라가고.... 이쁘장한 여인이 사색에 잠겨 노래를 하는 모습에.... 뿅~~~ 함풍황제가 갑니다....

나중에 서태후는 황태후가 된후 매일 경극을 보았다고 합니다....

중국 경극발전에 아주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855년 2월 귀인에 책봉되었다가 의빈으로 승격됩니다....

1856년 3월 자희(서태후)는 아들 재순(동치황제)을 출산하여 의비에 봉해지고... 다음에 귀비에 책봉됩니다...

서태후는 신분이 계속적으로 상승되자 마음속에 정권을 장악하고픈 욕망이 일어납니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북경으로 진격해 옵니다....

남편 함풍황제를 따라 승덕(열하)의 피서산장으로 피신을 합니다....

1861년 8월 함풍제는 이곳 피서산장에서 병사하고....

서태후의 6살난 아들이 황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이에 함풍황제의 황후는 황태후로 추대되고.... 자안태후.... 동태후(동쪽에서 살았기에)....라 하였고... 서태후는 자희태후.... 동태후의 반대인 서태후라 불립니다....

제1태후가 동태후...

제2태후가 서태후.... 그러나 서태후는 동치제의 생모였습니다.... 그래서 6살의 동치제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기 시작하는데....

드디어 동치황제가 17살이 되고.... 결혼하고.... 두 태후의 수렴청정을 끝내기로 결정했지만....

동치황제도 지 엄마 성격을 닮았는지 폭주가이고 성격도 날카롭습니다...

서태후....

항상 정치에만 관심이 있고.... 무슨일이나 보고 받기를 원하고....

아들 동치황제의 정사에 이리저리 끼어들어 황제의 결정을 번복하고.... 충돌이 잦아들게 됩니다...

동태후는 조용하기에.... 동치황제는 차츰 생모인 서태후를 멀리하고...

동태후를 가까이 합니다....



황후를 택할때도 동치황제는 양모인 동태후가 좋아하는 여인을 황후로 맞아들입니다.... 이에...

서태후는 동태후때문에 자기아들과 관계가 벌어진다고 동태후를 눈에 가시처럼 생각합니다...

어느날...

동태후, 서태후... 궁중에 사람들을 거느리고 함풍제의 릉에 제사를 지내러 갑니다...

제사 지낼때 동태후는 서태후더러 한발자욱 뒤에 서라고 합니다...

이유는 동태후가 황비였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했다고 생각한 서태후는 동태후를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함풍황제가 죽기 전에 동태후에게 준 밀서가 있었습니다... 서태후의 됨됨이를 알고 있는 함풍제는 서태후가 자기 아들이 황제가 되었다하여 동태후를 무시하면 이 밀서의 내용대로 서태후를 죽여버리라는 것입니다.... ㅋㅋㅋㅋ.... 별 밀서를 다 남기고 죽습니다....

이... 밀서... 서태후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밀서를 없에야 되는데..... 하고 서태후는 꾀를 생각해 냅니다...

한번은 동태후가 감기몸살로 앓아 눕습니다...

동태후의 병이 낳은 후.... 서태후는 자기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동태후를 만나러 갑니다.. 동태후... 서태후의 팔을 보고... 어찌된 일이냐고 묻습니다... 서태후 왈~~~

'언니가 아파 눕자 안타까워 점을 쳤더니.... 점쟁이 하는 말.... 약에 사람의 피를 타서 먹이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니.... 저의 팔의 피를.... '

이 말을 듣고 감격한 동태후.... 밀서를 당장 불에 태워 버립니다....

이 후로....

서태후의 태도는 180도 바뀌게 됩니다.... 불쌍한 동태후...쯔쯔쯧~~~~

동치황제.... 18세가 되어 결혼을 하나....

서태후의 등살에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밤마다 몰래 변복을 하고 기생집을 들락달락 거리다...

1874년 12월매독인지... 천연두인지.... 하여간 병세가 악화되 세상을 떠납니다....

아들이 죽자...

서태후는 수렴청정을 위하여 남편을 죽였다는 죄명을 씌워 동치황제의 황후인 며느리를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4살밖에 안된 여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삼고.... 광서황제로 옹립하고 수렴청정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 광서황제는 서태후의 여동생과 서태후의 시동생이 낳은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청왕조의 부계세습이 끝장나게 되고....

1881년 동태후도 갑자기 사망하게 됩니다...

이 동태후의 죽음은 아직까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병으로 죽었다는 설....

서태후의 강요로 자살했다는 설....

서태후가 독살했다는 설....

서태후의 일인 독재가 계속되다가....

광서황제가 19살이 되자..... 군정 실권을 잡기위해 개혁에 나섭니다...

1898년 이를 무술변법이라고 하는데....

103일만에 서태후에 의하여 무술변법을 추진한 개혁파들은 살해되거나 외국으로 망명하게 되고...... 광서황제는 서태후에 의해서 가택연금 상태가 됩니다....

광서황제가 갇혀있던 곳은 여름에는 이화원의 옥판당이었고.... 겨울에는 중남해의 영대였다고 합니다.... 10년간이나 갇혀 살았습니다....

1900년 8월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침공합니다...

서태후는 광서황제를 데리고 서안으로 피신하였다가 1901년 9월 [신축조약]을 체결합니다...

1902년 1월 서태후는 광서황제를 데리고 북경으로 돌아와서 다시 중남해 영대에 갇어 버립니다....

그러나 영원한 인생은 없는 법....

1908년 10월 13일 서태후는 74세의 생일을 기하여 큰 연회를 베풉니다...

여러 날 동안 과식하여 5일째 되던 날 이질이 발병하게 됩니다....

아편을 평소보다 배로 복용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서태후가 죽기 하루전.... 1908년 11월 14일 광서제가 죽습니다....

불쌍한 광서황제.... 평생 서태후의 그늘아래 제대로 자기 뜻대로 정치하면 못해보고....

서태후보다 하루 앞서 세상을 등지게됩니다....

1908년 11월 15일....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던 서태후....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후계자로 세운 다음날.....

점심식사를 받고...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 의자에서 쓰러지고....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서 대신들에게 말합니다....

' 이 후로 아녀자가 정사에 간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반드시 엄격한 제한을 두어 각별히 대비해야 하오. 특히 내시가 대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명나라 말기에 내시가 전횡하였던 일을 거울로 삼아야 할것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73년의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서태후...

살아생전 권력을 이용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는데...

한끼 식사의 주식이 60가지 였다고 합니다..... 점심때는 빵 종류만 30가지.... 각종 산해진미가 128가지 였다고 하는데.... 쩝...

거... 서태후의 밥상한번 보고 싶네요.....

당시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 식사비로 5000kg의 쌀을 살 수 있고... 만명의 농민이 하루를 먹을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합니다....

옷만해도 3000여 상자가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바꿔입는 사치꾼이였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일화는....

자기의 권위를 위하여... 이화원에 전화 설치를 동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화로 이야기하면.... 전화하는 사람이 무릎을 긇고 전화를 하는지 앉아서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궁녀들이나 내시, 대신들은 서태후를 무지 무서워 하였다고 합니다...

내시들이 서태후의 머리를 빗겨 주는데....

머리카락이 하나만 떨어져도 목이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머리좋은 내시가 있었는데.... 서태후의 머리를 빗겨 줄때는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빗었는데.... 서태후의 빠진 머리카락이 모두 소매안으로 떨어지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한 내시의 일기에..... 한 늙은 내시가 실수를 범했다해서 인분을 억지로 먹였다고 하고....

자신은 매일저녁 애기 엄마의 젖을 먹었다고 합니다...

애기 엄마 두명이 목욕을 하고 몸에 붉은 천을 감고 젖만 내놓고 다 감싸고 서태후는 침대에 눕고 젖먹이는 애기 엄마는 무릎을 끓고 젖을 먹였다고 전해집니다....

서태후는 중국 최초로 철로를 깔아 중남해까지 기차가 다니게 하고....

기차타고 점심을 먹으로 가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48년간이나 이런 호사스런 생활과.... 엄청난 권력을 누렸지만....

황제도 아니요...

황후도 아니었기에.....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정문.... 오문의 중간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위폐가 있는 제단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중간의 조각입니다....

이를 丹陛石(단폐석) 이라고 하는데.... 보통 용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 서태후의 단폐석은 봉황이 용의 위에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서태후가 봉황....

황제가 용.....

봉황이 용의 위에 있다 !!!!!

한마디로 황제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서태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지요!!!!!

ㅋㅋㅋㅋ... 서태후 짱.....




자...

이제 서태후의 능 앞에 다 왔습니다.....



서태후...
서태후...
서태후...
청나라 황제들의 무덤을 떠나며... 중국.하북성

2006/12/26 17:01

복사 http://blog.naver.com/etien/80032719298



서태후의 무덤 옆에는 동태후의 무덤이 있습니다...

근데...

서태후의 무덤이 서쪽에 있어야 정상....

동태후의 무덤이 동쪽에 있어야 정상인데.....

이둘의 무덤이 바뀌어져 있다고 합니다....

서태후의 무덤이 동쪽에....

동태후의 무덤이 서쪽에 있다고 하는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서태후가 동태후를 꼬여 무덤을 가지고 내기를 하고 서태후가 이겨서 동쪽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왼쪽 보이는 건물들이 동태후의 무덤입니다.....

뭐.... 무덤의 건물 형태나 배치는 서태후의 무덤과 똑같습니다.....



서태후 능.... 위폐가 있는 건물안의 모습입니다....

이제....

1644년 만주에서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으로 입성한 청나라 황제...

순치제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청나라 3대 황제이자...

1644년 이자성을 멀리 몰아내고 북경에 입성하여 중국의 주인된 청나라 황제....

1643년.... 청나라의 2대황제인 태종이 갑자기 죽고....

6살된 이..... 세조 순치제가 등극합니다....순치제는 북경에 입성하고 다시한번 즉위식을 올리고.... 즉위식 언어는 만주어.... 한어.... 즉... 한문..... 다음은 몽골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세가지 언어는 만주와 한족 중국과 몽골을 다 다스리는 대황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근데...

청나라 만주왕조는 한족인 중국인과 몽골인의 대우가 달랐습니다....

몽골인에게는 왕작을 주고 친형제처럼 대했는데.... 한족에게는 그렇치 않았습니다...

일찍이 청나라 만주족이 만주에서 일어날때부터 몽골족의 문자를 빌려 만주의 말을 표기하게하고 만주족과 몽골족은 짝짝꿍이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2대황제 태종이나 6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순치제를 대신한 섭정왕인 숙부예친왕도 몽골의 왕가에서 아내를 맞았으며 순치제도 역시 몽골에서 아내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치제....

7살에 자금성의 주인이 되고.... 어려서 부터 중국의 문화를 매우 사랑한 황제가 되엇으며 중국적인 교양을 쌓으며 자라게 됩니다....

순치제의 거실에는 중국의 고전과 소설등이 가득했으며 중국의 젊은 학자들을 황제거실까지 불러들여서 담소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순치제는 불교를 좋아하여 불교경전 읽기를 좋아하고.... 덕망놓은 스님을 초대해 불교교리를 묻곤하였다고 합니다....

이러게 중국문화에 동화되어 가는순치제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선황 태종의 황후인.... 즉 순치제 자신의 어머니(몽골인)가 자신을 대신해 섭정하고 있는 숙부 예친왕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즉.... 형수와 시동생이 결혼을 한것입니다...

이 문화는 몽골이나 만주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사상에 물든 순치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청나라 조정의 중국인 관리들도 놀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철이든 순치제....

이러한 몽골과 만주의 문화에 반발을 느끼고.... 숙부인 예친왕이 죽자.... 자신의 몽골출신 황후를 트집을 잡아 폐하고.... 새 황후를 몽골왕가에서 또 데려오자 예의를 모르는 여자라며 냉대하며 반 몽골적인 협오감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중국문화와 불교문화에 심취한 순치제....

황제들의 성생활에 관한 까다로운 제도를 만듭니다...

황제가 황후와 잠자리를 가질때에는 별문제가 없으나 후궁과 관계를 할때는 황제가 저녁수라가 끝난무렵 환관이 은쟁반에 수십여장의 녹두패를 담아서 황제에게 올립니다....

패 하나하나에 황제가 총애하는 후궁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황제는 그중에서 마음에 쏠리는 이름이 적인 패를 뒤집어 놓습니다...

이 경우에 황제와 후궁이 관계를 갖는 시간은 엄격이 정해져 있는데 시간이 되면 환관은 후궁을 되돌려 보내고 황제에게 수태의 여부를 물어보아 허락하면 장부에 오늘의 날짜를 기록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후궁의 아랫배를 마사지하여 정액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황제가 후궁에 나갈때는 황후에게 미리 전갈이 가고.... 황후가 허락을 해야만 해당 후궁이 황제를 맞아 들였다고 합니다.... 이것도 순치제가 만든 법이라고 합니다....

순치제...

6살에 황위에 오르고....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뜹니다....

순치제의 죽음에 야사가 전해져 오는데....

순치제의 후궁중에 동귀비라는 어여쁜 만주귀족가문의 출신이 있었는데.... 한족이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순치제는 그녀를 너무 사랑합니다.... 그녀가 없으면 숟가락도 들지 않았다고 하니....

그렇게 아끼던 동귀비가 어느날 덧없이 죽습니다...

황제는 죽은 동귀비를 황후에 봉한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옥좌를 내팽개치고 출가합니다....

산서성의 오대산에 틀어박혀 버립니다...

아무리 조정대신들이 돌아오기를 간청해도 들은 척을 안하자 대신들과 황실은 어쩔 수 없이 황제가 병으로 죽었다고 발표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야사지....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무튼... 순치제는 죽기전.... 유언을 발표합니다...

한인을 너무 우대하고 만주인을 무시한 점....

문관을 중시하고 무관을 홀대한점을 반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선황들에 비해서 너무 중국화를 뉘우치지만....

순치제의 뒤를 이은.... 강희제때는 몽골에서 완전히 중국으로 기울게 됩니다....

한마디로...

아버지 순치제보다.... 더 중국화를 시킵니다....


여기 청동링에 무덤 자리를 정하고.... 첫번째로 묻힌 순치제.....

이 만주족들은 백두산 산록에서 유목생활을 하던중.... 풍수길지에 조상의 무덤을 잘쓴후 국운이 흥하였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심양의 동릉과 북릉....

초대황제 누루하치와 2대황제 황타이지의 릉입니다....

이 두릉은 중국 만리장성 북쪽 치고의 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7살짜리 순치제는 청의 국운을 계속 이어줄 풍수길지를 계속 찾아 나섭니다...

북경 주변에서 가장 좋은 풍수길지는 명나라 13릉이었습니다....

그러나 명13릉 자리는 운이 다했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길지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결국 천하 제일 명당을 찾아 냅니다....

그곳이 바로 이 하북성 존화시.....청동릉입니다...

이곳은 용이 떠오르고 봉황이 춤추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연산산맥의 남쪽으로....

북으로는 昌端山(창서산)이 있고.... 남으로는 金星山이 병풍처럼 둘러있습니다...

풍수길지의 교과서 그대로 입니다... 이곳을 자신의 황릉으로 정하고.... 청나라의 초기 기운을 다지게 하는 자리입니다....

풍수설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합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

북경 창평구의 명 13릉이 이미 만원이라 기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고....

이곳 청동릉이 위치한 자리가 최대의 길지라는것을 알고 자신의 황릉을 이곳에 건조하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운이 일찍 끝나 이자성 반란으로 33세의 나이로 자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청동릉에는 모두 5명의 청나라 황제와 15명의 황후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 청동릉에는 순치제의 어머니인 효장문(孝庄文) 태후의 무덤이 있습니다....

.............. 효장문 태후.....

청나라의 2대 황제 황타이지의 황후이다....

원칙대로라면.... 이 효장문 태후는 죽어서 심양 북릉에 묻혀있는 황타이지 남편 옆으로 가야한다....

효장문 태후.... 그녀는 누구인가????

그의 정치적 센스와 용기로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고 초창기 청의 기운을 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귀족출신인 효장문 태후에게는 복림(福臨)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남편 황타이지가 준비없이 갑자기 죽습니다...

2대황제 황타이지가 죽자....

황타이지의 큰아들 호격과 동생 다얼콘 사이에 황위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두 세력이 우열을 가릴 수 없어 국가가 분단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효장문 태후가 정치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아들 복림을 황위를 계승토록하는 절충안을 냅니다...

양대세력은 이 절충안에 설득되고.... 결국 6살의 복림... 순치제가 등극하게 됩니다...

숙부와 형님의 양보로 어부지리를 얻은 복림이 황제가 되었지만 숙부의 야심을 의심하게 되고... 효장문 태후는 야심가인 다얼콘과 결혼하여 아들 복림을 지키는 섭정왕이 되게 합니다....

섭정왕 다얼콘은 명나라 장수 오삼계와 합작으로 북경으로 진격 청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북경으로 들어온 다얼콘....

복림을 없애고 자신 스스로가 황제가 되고저 합니다...

눈치챈 효장문 태후는 복림이 이미 다얼콘의 아들이 되었음을 상기시키고....

아들의 황위를 아버지가 빼았았다는 오명보다는 황제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순리라면서 복림의 황위를 끝까지 지켜줄것을 호소합니다.....

그후 섭정왕 다얼콘이 사냥터에서 사고로 죽게됩니다.... 당시 14살의 순치황제는 어머니 효장문 태후의 도움으로 빠르게 친정체제로 전환..... 황실의 기반을 구축합니다....

이처럼 현명한 효장문 태후는 자신이 죽어 묻힐곳을 생각해 봅니다....

이미 시동생 다얼콘과 결혼하여.....

심양땅에 묻혀있는 남편 황타이지 옆에 묻힐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아들 순치제 옆에 묻히고자 이곳 청동릉을 택합니다...

자신보다 일찍 아들 순치제가 죽자....

8살 손자 강희제를 황위에 오르게 하고 생모가 없는 손자 강희제의 교육도 맡습니다...

강희황제가 청나라의 가장 위대한 황제가 된 것은 할머니 효장문 태후의 숨은 지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효장문 태후가 청동릉에 들어간 것은 아들 순치제보다 27년이나 지나서였다고 합니다....



순치제의 무덤을 향하여 앞으로~~~~~



무덤은 이미 도굴 되었으며.... 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순치제의 위폐가 있는 곳...

앞에 3마리의 동물들이 있습니다....

의미가 ??????



청동릉....

한적하니 멋진곳입니다.....

언젠가는........... 서동릉도 찾아가볼 생각입니다....



베이징 자금성이나 이화원에 가면 맨날 듣는 소리가.... 서태후.... 서태후...
근데 정작 서태후의 무덤속에는 이렇게 한적합니다...
서태후 자신은... 살아생전이 꿈이요..... 꿈꾸는 죽음이현재의 현실이 아닌지????

[출처] 서태후의 무덤|작성자 하늘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