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으로 내려갑니다..... 조명이 너무 어둡습니다.... 많이 떨리네요.....
무덤이 아니라 집으로 들어가는 분위기 입니다....
무덤 제일 안쪽..... 관이 있습니다.... 건륭황제의 사진이 걸려져 있네요....
흐흐흐..... 사진을 못찍게 하는데..... 관람객이 없어서.... 감시원이 없습니다....
석관입니다....
청나라에 들어서서.... 만주족들은 티벳 라마불교를 엄청 숭상합니다.... 그 한이유가 몽골지방에서도 이 라마불교가 융성하는데.... 북쪽의 몽골족들의 지배를 위한 하나의 작전이였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무덤안에도 몽골어 라마교 경전을 새겨 넣었습니다....
지하무덤을 나와 무덤앞 누각에 올라갑니다....
올라왔던 길.....
무덤입니다.... 벽돌로 쌓아서 분을 만들었습니다..... 무덤위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네요.....
건륭황제릉.....
이 무덤들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무덤은...... 서태후의 무덤일겁니다... 서태후.... 함풍제(1851-1861)의 후비가 되고.... 그가 낳은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권력을 잡기 시작합니다... 남편 함풍제가 죽은 후.... 동치제.... 1862-1874년 광서제.... 1785-1908년까지.... 엄청날 권력을 휘두른 여인입니다.... 그러나 죽고... 이곳에 묻히고.... 군벌들은 이곳의 무덤을 도굴합니다....
서태후.... 어디서 태어났는가???? 출생의 비밀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서태후는.... 1835년 산서성 장치현 서파통의 한 가난한 한족 농민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름은 왕소겸... 4살때 양녀로 팔려가 이름을 송령아로 바꾸고... 12세때 다시 시녀로 팔려가 이름을 옥란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1852년 혜징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궁녀로 선발되어 입궁합니다... 이때 이미 서구 열강들은 중국을 아편의 도가니에 밀어넣고 침탈을 일삼습니다... 궁에 들어간 서태후는 황제의 총애를 받기위해 일년동안 부단히 노력합니다... 황제를 모시는 내시들에게 부탁해 황제가 산책할 무렵 서태후는 자기 장기중 하나인 노래를 합니다... 산보를 하던 황제가 은은한 노래를 따라가고.... 이쁘장한 여인이 사색에 잠겨 노래를 하는 모습에.... 뿅~~~ 함풍황제가 갑니다.... 나중에 서태후는 황태후가 된후 매일 경극을 보았다고 합니다.... 중국 경극발전에 아주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855년 2월 귀인에 책봉되었다가 의빈으로 승격됩니다.... 1856년 3월 자희(서태후)는 아들 재순(동치황제)을 출산하여 의비에 봉해지고... 다음에 귀비에 책봉됩니다... 서태후는 신분이 계속적으로 상승되자 마음속에 정권을 장악하고픈 욕망이 일어납니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북경으로 진격해 옵니다.... 남편 함풍황제를 따라 승덕(열하)의 피서산장으로 피신을 합니다.... 1861년 8월 함풍제는 이곳 피서산장에서 병사하고.... 서태후의 6살난 아들이 황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이에 함풍황제의 황후는 황태후로 추대되고.... 자안태후.... 동태후(동쪽에서 살았기에)....라 하였고... 서태후는 자희태후.... 동태후의 반대인 서태후라 불립니다.... 제1태후가 동태후... 제2태후가 서태후.... 그러나 서태후는 동치제의 생모였습니다.... 그래서 6살의 동치제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기 시작하는데.... 드디어 동치황제가 17살이 되고.... 결혼하고.... 두 태후의 수렴청정을 끝내기로 결정했지만.... 동치황제도 지 엄마 성격을 닮았는지 폭주가이고 성격도 날카롭습니다... 서태후.... 항상 정치에만 관심이 있고.... 무슨일이나 보고 받기를 원하고.... 아들 동치황제의 정사에 이리저리 끼어들어 황제의 결정을 번복하고.... 충돌이 잦아들게 됩니다... 동태후는 조용하기에.... 동치황제는 차츰 생모인 서태후를 멀리하고... 동태후를 가까이 합니다....
황후를 택할때도 동치황제는 양모인 동태후가 좋아하는 여인을 황후로 맞아들입니다.... 이에... 서태후는 동태후때문에 자기아들과 관계가 벌어진다고 동태후를 눈에 가시처럼 생각합니다... 어느날... 동태후, 서태후... 궁중에 사람들을 거느리고 함풍제의 릉에 제사를 지내러 갑니다... 제사 지낼때 동태후는 서태후더러 한발자욱 뒤에 서라고 합니다... 이유는 동태후가 황비였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했다고 생각한 서태후는 동태후를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함풍황제가 죽기 전에 동태후에게 준 밀서가 있었습니다... 서태후의 됨됨이를 알고 있는 함풍제는 서태후가 자기 아들이 황제가 되었다하여 동태후를 무시하면 이 밀서의 내용대로 서태후를 죽여버리라는 것입니다.... ㅋㅋㅋㅋ.... 별 밀서를 다 남기고 죽습니다.... 이... 밀서... 서태후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밀서를 없에야 되는데..... 하고 서태후는 꾀를 생각해 냅니다... 한번은 동태후가 감기몸살로 앓아 눕습니다... 동태후의 병이 낳은 후.... 서태후는 자기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동태후를 만나러 갑니다.. 동태후... 서태후의 팔을 보고... 어찌된 일이냐고 묻습니다... 서태후 왈~~~ '언니가 아파 눕자 안타까워 점을 쳤더니.... 점쟁이 하는 말.... 약에 사람의 피를 타서 먹이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니.... 저의 팔의 피를.... ' 이 말을 듣고 감격한 동태후.... 밀서를 당장 불에 태워 버립니다.... 이 후로.... 서태후의 태도는 180도 바뀌게 됩니다.... 불쌍한 동태후...쯔쯔쯧~~~~ 동치황제.... 18세가 되어 결혼을 하나.... 서태후의 등살에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밤마다 몰래 변복을 하고 기생집을 들락달락 거리다... 1874년 12월매독인지... 천연두인지.... 하여간 병세가 악화되 세상을 떠납니다.... 아들이 죽자... 서태후는 수렴청정을 위하여 남편을 죽였다는 죄명을 씌워 동치황제의 황후인 며느리를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4살밖에 안된 여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삼고.... 광서황제로 옹립하고 수렴청정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 광서황제는 서태후의 여동생과 서태후의 시동생이 낳은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청왕조의 부계세습이 끝장나게 되고.... 1881년 동태후도 갑자기 사망하게 됩니다... 이 동태후의 죽음은 아직까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병으로 죽었다는 설.... 서태후의 강요로 자살했다는 설.... 서태후가 독살했다는 설.... 서태후의 일인 독재가 계속되다가.... 광서황제가 19살이 되자..... 군정 실권을 잡기위해 개혁에 나섭니다... 1898년 이를 무술변법이라고 하는데.... 103일만에 서태후에 의하여 무술변법을 추진한 개혁파들은 살해되거나 외국으로 망명하게 되고...... 광서황제는 서태후에 의해서 가택연금 상태가 됩니다.... 광서황제가 갇혀있던 곳은 여름에는 이화원의 옥판당이었고.... 겨울에는 중남해의 영대였다고 합니다.... 10년간이나 갇혀 살았습니다.... 1900년 8월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침공합니다... 서태후는 광서황제를 데리고 서안으로 피신하였다가 1901년 9월 [신축조약]을 체결합니다... 1902년 1월 서태후는 광서황제를 데리고 북경으로 돌아와서 다시 중남해 영대에 갇어 버립니다.... 그러나 영원한 인생은 없는 법.... 1908년 10월 13일 서태후는 74세의 생일을 기하여 큰 연회를 베풉니다... 여러 날 동안 과식하여 5일째 되던 날 이질이 발병하게 됩니다.... 아편을 평소보다 배로 복용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서태후가 죽기 하루전.... 1908년 11월 14일 광서제가 죽습니다.... 불쌍한 광서황제.... 평생 서태후의 그늘아래 제대로 자기 뜻대로 정치하면 못해보고.... 서태후보다 하루 앞서 세상을 등지게됩니다.... 1908년 11월 15일....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던 서태후....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후계자로 세운 다음날..... 점심식사를 받고...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 의자에서 쓰러지고....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서 대신들에게 말합니다.... ' 이 후로 아녀자가 정사에 간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반드시 엄격한 제한을 두어 각별히 대비해야 하오. 특히 내시가 대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명나라 말기에 내시가 전횡하였던 일을 거울로 삼아야 할것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73년의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서태후... 살아생전 권력을 이용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는데... 한끼 식사의 주식이 60가지 였다고 합니다..... 점심때는 빵 종류만 30가지.... 각종 산해진미가 128가지 였다고 하는데.... 쩝... 거... 서태후의 밥상한번 보고 싶네요..... 당시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 식사비로 5000kg의 쌀을 살 수 있고... 만명의 농민이 하루를 먹을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합니다.... 옷만해도 3000여 상자가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바꿔입는 사치꾼이였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일화는.... 자기의 권위를 위하여... 이화원에 전화 설치를 동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화로 이야기하면.... 전화하는 사람이 무릎을 긇고 전화를 하는지 앉아서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궁녀들이나 내시, 대신들은 서태후를 무지 무서워 하였다고 합니다... 내시들이 서태후의 머리를 빗겨 주는데.... 머리카락이 하나만 떨어져도 목이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머리좋은 내시가 있었는데.... 서태후의 머리를 빗겨 줄때는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빗었는데.... 서태후의 빠진 머리카락이 모두 소매안으로 떨어지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한 내시의 일기에..... 한 늙은 내시가 실수를 범했다해서 인분을 억지로 먹였다고 하고.... 자신은 매일저녁 애기 엄마의 젖을 먹었다고 합니다... 애기 엄마 두명이 목욕을 하고 몸에 붉은 천을 감고 젖만 내놓고 다 감싸고 서태후는 침대에 눕고 젖먹이는 애기 엄마는 무릎을 끓고 젖을 먹였다고 전해집니다.... 서태후는 중국 최초로 철로를 깔아 중남해까지 기차가 다니게 하고.... 기차타고 점심을 먹으로 가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48년간이나 이런 호사스런 생활과.... 엄청난 권력을 누렸지만.... 황제도 아니요... 황후도 아니었기에.....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정문.... 오문의 중간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위폐가 있는 제단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중간의 조각입니다.... 이를 丹陛石(단폐석) 이라고 하는데.... 보통 용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 서태후의 단폐석은 봉황이 용의 위에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서태후가 봉황.... 황제가 용..... 봉황이 용의 위에 있다 !!!!! 한마디로 황제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서태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지요!!!!! ㅋㅋㅋㅋ... 서태후 짱.....
자... 이제 서태후의 능 앞에 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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