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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주(蘇州

라파엘/표종환 2012. 9. 25. 18:29



소주(蘇 州)

소주(蘇 州)
"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杭州(항주)와 함께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물의 도시이다. 그리고 정원庭園(정원)과 물로 대변되는 중국 남방의 대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기온은 온난습윤하며, 교통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전체 면적은 8488㎢인데, 그 중 평원이 4654㎢를 차지한다. 총인구는 571만 명이며, 그 중 시내 거주 인구는 105만 명이다.
기원 전 514년에 도시가 성립되었으며, 현재까지 2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서한 초기에는 동남부의 최대의 도시로 번영하여 "사주지부(絲綢之府 : 비단의 도시)", "어미지향(魚米之鄕 : 바다가 가까워 살기 좋은 곳)", "원림지도(園林之都 : 정원의 도시)" 등으로 칭해졌다. 지리적 장점과 견직물 산업의 활성화로 예로부터 부유한 상업 도시로도 유명하다.
관광 명소
◈ 중국 4데 정원중의 하나인 拙政園(졸정원)
소주 동북쪽에 위치해 있고, 명 정덕(鄭德) 4년(1509년)에 지어졌다. '졸자(拙者)가 정치를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유원(留園), 이화원, 승덕이궁(承德離宮)과 함께 중국 4대 정원에 꼽힐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미경으로 인해 홍루몽 대관원(大觀園)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졸정원은 명나라의 왕헌신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데, 화원은 동, 중, 서 세 부분으로 나뉘며, 명대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창살 무늬가 모두 다를 정도로 섬세하며, 건물은 용의 형상을 띠게 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반영하였다. 총 면적은 5만㎡이며, 그 중 3/5정도는 연못이 차지한다.
연못을 중심으로한 작은 정자나 복도, 산을 본떠 돌로 만든 석가산이 만들어져 있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색적인 건물인 견산루, 파산랑과 경치를 보기위해 지어진 원향당 등이다.
장계(張繼)의 시로 유명한 한산사(寒山寺)
寒山寺(한산사)는 당나라 시인 張繼(장계)의 시 "楓橋夜泊(풍교야박)"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寒山寺(한산사) 원래 梁나라 天監(천감)연간(502-517)에 창건되었다.당나라 貞觀(정관) 연간(672-649)에 奇人(기인) 승려인 寒山(한산)과 그의 동료인 拾得(습득)이 살았다는 데서 원래 이름인 妙利普名塔院(묘리보명탑원)이라는 긴 이름을 버리고 점차 寒山寺(한산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곳에 살던 승려 寒山(한산)은 시인으로 3백여수의 시를 남긴 사람인데, 그의 친구 拾得(습득)과 함께 화상이 대웅전 안에 남아 있다.
이곳에는 또 이 절을 찾아온 유명한 시인들이 남긴 시 寒山寺三十六首(한산사삼십육수)등이 걸려 있다. 張繼(장계)의 시 "寒山寺(한산사)"에 나오는 종소리를 날려보내던 종이 지금도 누각 위에 걸려 있다.
장계(張繼)의 《楓橋夜泊》
月落烏啼霜滿天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江楓漁火對愁眠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 소주의 상징인 호구(虎丘 : 후치우)
북서쪽으로 5㎞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원래 이름은 해용산(海涌山) 이었는데,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춘추시대 오왕인 합려(闔閭)가 이 곳 연못 아래에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합려의 무덤을 만들 때 관 속에 검 3000개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이 검들 중에는 훗날 명검으로 전해지는 검들이 포함되어 있다.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이 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도굴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도굴은 중단되었다. 지금은 이 곳에 물이 들어차서 연못이 되었고, 사람들은 검지(劍池)라고 부른다.
송대 시인인 소동파(蘇東坡)는 "到蘇州而不遊虎邱, 乃是憾事" : 소주에 와서 호구를 구경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라는 말을 했을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
40m 높이의 언덕 정상에는 호구탑이 있는데, 높이가 47.5m이며 수나라 때 지어진 것이다. 소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건축물로 몇 차례의 보수공사에도 불구하고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단 호구탑 내부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最古)의 벽돌탑으로 961년에 완성되었다.
호구산 입구 오른쪽에 있는 시검석(試劍石)은 오왕 합려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 시험삼아 잘랐다는 전설이 있는 돌로, 실제로 가운데가 돌로 쪼개져 있다.
그곳에서 좀 더 올라가면 넓게 펼쳐진 돌이 있는데, 이곳이 1000명이 앉아서 승려의 설법을 들었다고 하는 천인석(千人石) 있다.
그 외에도 소동파가 즐겼다는 샘물인 제삼천(第三泉)이나 오왕 합려의 유체와 함께 3000여 개의 검이 묻혔다고 하는 검지등이 있다. 검지에서는 진시황이나 손권(孫權)도 명검을 발굴하려고 노력했지만 단 1개의 검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원(留園)
중국 4대 정원의 하나로 1525년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졸정원(拙政園)과 함께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정원이다.
명나라 가정 연간(1522-66)에 서시태가 개인 정원으로 만들었다.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동원(東園)이라고 불리었으나, 몇 번의 개축을 거쳐 청(淸)대에 유원(留園)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4개의 영역이 있어서 각각 다른 취향의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녹나무로 만들어진 오봉선관(五峰仙館)이라는 청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있다. 700m 길이의 장랑(長廊)과 장랑의 벽면에 있는 화창(花窓)이 있는데 각각의 모양이 다른 화창을 통해 바라보는 경관은 볼 만하다. 관운봉(冠雲峰)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태호석은 태호석의 왕이라고까지 불리는 명석(名石) 중의 명석이다.
창랑정(滄浪亭)
소주에는 4대 명원(名園)이 있다. 이 창랑정은 그 4대 명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약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다. 면적은 약 1ha로,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배치와 구조에 대나무가 잘 어울린다. 취령롱(翠玲瓏), 화창(花窓), 청향관(淸香館), 명도당(明道堂)이나 500명의 석각이 있는 오백명람사(五百名覽祠) 등이 볼 만하다. 창랑이라는 이름은 굴원(屈原)의 시 어부사(漁父詞)에 나오는 창랑지수(滄浪之水)에서 따온 것.
이원(怡園)
소주 명원 특유의 특색 있는 부분을 활용하여, 청대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원래는 청나라 때 관리의 개인정원이었다. 면적 0.6ha로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조성이 볼 만한 곳이다. 쑤저우시의 가장 중앙의 번화가인 관전가에서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쇼핑하는 중간에라도 잠깐 들러볼 수 있다.
사자림(獅子林)
원(元)대 말의 고승인 천려선사(天如禪師)가 스승을 기념하기 위해 사원으로 건립한 곳이다. 그 정원에 스승이예전에 살았던 저장성(浙江省) 천목산(天目山) 사자암(獅子岩)과 비슷한 사자 형태의 태호석을 수없이 배치하였기 때문에, 그 후에 사자림(獅子林)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연못 주변은 대부분 태호석을 쌓아 만든 축산으로, 축산 내에는 태호석이 얼기설기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 정원을 따라서 회랑이 있는데, 이곳에는 송(宋)대의 4대 서가(書家)의 하나로 꼽히는 황정견(黃庭堅), 소식(蘇軾:소동파)의 글 등 60여 점의 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