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風景 그리고 中國

세라사원(중국서부 티베트

라파엘/표종환 2012. 9. 25. 18:54



중국서부극지대탐험24-세라사원

라싸에 있는 동안 티베트를 알기 위해 무척 애를 썼지만 웨이하이부터 동행한 중국 감독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민접촉하는 것을 가장 예민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는 탐험대장의 충고는 내내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긴 티베트 땅에서 달라이 라마 사진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자주 찾은 곳이 사원이었다.
이미 관광지화 됐지만 티베트 사람이 대부분인 사원에서 그들의 면모를 찾아 볼려고 했기
때문이다. 간덴사원이나 조캉사원에서는 그들의 심오한 역사와 신심을 확인 할 수 있었지만
중국 점령 이후 티베트를 생각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진면목을 볼 수는 없었다.
라싸 체류 3일째 되는 날도 학문연구로 유명했던 세라사원(色拉寺)을 찾았다.
다른 사원과 달리 오직 순수한 불교연구에만 정진했던 사원으로 소위 엘리트 승려가 많이
배출되어 그 힘이 정부를 두렵게 할만큼 막강했었다는 사원이다.
티베트에 대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였다.
라싸의 3대 사원 중 하나인 세라사원은 라싸 시내에서 북서쪽 8킬로미터 쯤 세라우쯔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찾아가기가 쉬웠다.
세라사원은 겔룩파의 창시자 총카파의 수제자인 샤카 예쉐가 스승의 뜻을 받들어
1419년에 창건 되었다고 한다. ‘세라’는 티베트어로 ‘싸락눈’이라는 뜻으로 사원을 건설하는 동안 계속 싸락눈이 내렸다고도 하고, 산기슭에 지천으로 자란 들장미의 이름을 따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불교학교로 유명했던 곳으로 이 곳 역시 티베트 최대의 불교학교라던 드레풍 사원에
견줄만 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약 250명의 승려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나마 고승은 없고
젊은 승려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노점상들이 진을 친 입구를 지나 대법당 쪽으로 오르는 길은 크고 넓은 가로수가 시원스레
햇빛을 가려 주고 있었지만 이름만큼 기품이나 위엄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문화혁명때 비교적 피해가 덜 했다는 사원은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한 듯 보인다.
그러나 사원을 정비하거나 복구하는데는 여력이 달리는 뜻 조금은 남루해 보인다.
대법당 쪽으로 올라 갈수록 부채꼴 형태로 사원의 진면모가 펼쳐지는데 좁다른 입구에서는
생각지 못한 규모에 놀란다.
더구나 체계적인 계획에 의해 건물이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데도 지형에 어울리게 배치하여
건물이 많아도 빽빽하지 않으며 복잡한 듯하지만 어지럽지도 않다.
중심이 되는 대법당이나 탕카를 거는 구조물도 눈에 잘 띄게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다. 예전 공부하는 승려가 수 천명에 이르렀다는 불교학교로서의 저력을 보는듯하다.
대법당을 돌아 보다가 우연히 윈난성에서부터 왔다는 한국의 젊은 배낭여행객들과 만났다.
혹 우리랑은 다른 경험을 했을까 싶어 대화를 나눠봤지만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티베트를
예찬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작금의 한국에서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와 중국의 침략과 독립저항이라든가 하는 함수 속에
티베트를 상당히 우호적으로 보고 있는 젊은이들이라 일반적인 지식도 있으리라 믿었건만
전혀 아니었다. 순박하다느니 미소가 아름답다느니 경치가 죽여 준다거니...
심지어는 “티베트는 원래 중국 땅 아니예요?” 한다.
티베트에 대해 몰이해하는 것은 그렇다쳐도 지나친 환상(아름다운 경치와 싼 물가, 인심이 대부분)으로 꽉 차 있었다. 정치적인 환경은 모르거나 전혀 고려하지 않아 보였다.
굳이 티베트에 대한 단상이 있다면 다람살라에 대한 환상이 티베트에 대한 생각으로 대체된 듯 보였다. 윈난에서 동부 티베트를 거쳐 라싸에 이르기까지 3개월 여를 티베트에 있었다는
여행객들의 수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중국이 주장하고 선전하는 서부대개발의 혜택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밖에는 살지 못하는 티베트 사람들.
거부할 수 없는 가난과 식민지배의 고통 속에서도 잃지 않은 그들의 시골 인심 같은 후덕함과
때에 쩔은 얼굴에서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의 눈에서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어리석은 여행자들이었다.
아니면 50여년 동안 티베트는 철저히 외면 당하고 잊혀지고 있는지도 모를